제 2의 류승완은 나올 수 없다
류승완 감독을 좋아한다. 유쾌 상쾌 통쾌한 액션활극 하나만큼은 한국에서는 1등이고 전 세계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감독이다. 재해석한 성룡식 액션 시퀀스와 더불어 80년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잘 짜여진 액션마-스게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가 내놓은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아마 와이키키 브라더스 말고는 다 봤을 거다. 청불 이슈 혹은 시간 이슈로 인해서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는 비디오 내지 OTT로 챙겨봤다. 부당거래는 분명히 한국 영화사에 남을 만한 수작이고, 모가디슈 역시 뜨거운 국밥만 많은 요즘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토렴식 국밥이라 부를 수 있는 웰메이드 영화다. 베테랑? 말해 무엇하겠는가.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서사 + 시대정신을 적당히 녹여낸 대사들 + 악역마저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만드는 캐릭터 구축력까지 흠 잡을 데가 없다.
넷플릭스에 베테랑2가 열리자마자 바로 봤다. 극장 개봉 당시 바빠서 보지 못해서 아쉬워서 더 반가웠다.
그럼에도 나는 베테랑2가 좋았다
재밌게 봤다. 베테랑1만큼의 통쾌함은 없을지언정 그보다 더 원숙해진 화면연출과 미디어 & 자경단 비즈니스모델도 잘 보여줬다.
연출 살아있다. 화면연출이 생동감 넘친다. 주연 배우들의 클로즈업 화면을 넘기면서 캐릭터를 대비시키거나, 관계를 긴밀하게 보여주는 연출은 베테랑1에선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런 연출이 ‘은유’적이면 보다 많은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텐데, 참으로 직관적으로 짰다.
이 영화를 보는 데에 있어서 핵심은 ‘주인공만 모르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관객들’의 스릴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우리는 알고, 주인공만 모르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전율 등은 주로 공포영화 혹은 e스포츠 그리고 WWE에서 느낄 수 있다. 아! 제발 거기로 가지마! !!! 아앙ㄱ!! 이런 거.
그 점에서 베테랑2의 여러 연출은 스릴러 및 공포영화에서 볼법한 것들이 많았다. 실제로 사체나 인물 사이 전투를 보여주는 방식도 1보다 더 적나라하다. 스릴이 중요한 이 각본을 살리는 데에 있어서 유효한 연출을 했다고 본다. 몇몇 장면에서는 이를 위해서 너무 극적으로 만들다보니 만화 같다는 인상도 있다만 그래도 굿.
그만큼 연기도 살아있다. 류승완이 요구하는 액션은 크게 1) 몸을 잘 쓰는 연기와 2) 대사를 소화하는 연기다. 여기서 말하는 몸을 잘 쓰는 연기는 액션의 자연스러움은 물론이고 캐릭터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을 잘 그려내야만 한다. 맞으면 맞은 것처럼, 때리면 때린 것처럼, 아프면 아픈 것처럼 보여야 한다.
몸을 잘 쓰는 일은 어렵다. 30살만 넘어도 대체 춤을 어떻게 추는 걸까, 연예인들은 어떻게 저렇게 생생하게 뛰고 움직이까라는 생각이 든다. 런닝맨이나 무도가 추격전을 멈춘 이유가 있다. 이 점에서 황정민은 참 대단하다. 50대 배우 중에 그보다 몸을 잘 쓰는 한국 배우가 있을까 싶다. 정우성, 황정민 정도만 생각나네. 톰 크루즈는 천외천이니까 빼고..
정해인의 연기도 빛났다. 정해인을 보면서 얼굴의 기본값이 김수현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김수현은 그래도 ‘선한’ 인상에 가깝다. 정해인은 잘생겼으면서, 할 말 다 할 것 같고, 동시에 묘하게 쎄한 눈빛도 갖고 있는 특이한 인상이다. 비슷한 느낌으로는 임시완이 있다. 임시완보다 덜 꽃돌이 느낌이다. 임시완은 너무 이쁘단 느낌이고, 정해인은 상견례 면접프리패스상. 순수한 듯 정의로운 인상에서 종종 느껴지는 쎄한 눈빛을 잘 보여줬다. 악역 연기 하는 거 좀 더 보고 싶다. 흥행 성적은 멜로물이 좋을 거지만, 스릴러에서 자주 봤으면 하는상이다.
아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좋게 본 면도 많지만, 아쉬운 것도 많다. 좋은 점과 연결되어 있다. 화면 및 액션 연출 너무 좋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도 날아다닌다. 그런데… 우선 조연이 너무 죽었다. 주연을 빛내기 위해서 죽은 게 아니라, 그냥 비중이 없다. 전작에서 보이던 팀 내에서의 개그 티키타카나 나름의 스토리 (겁 많은 후배가 칼맞고 분노하는 등) 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각본의 포커스가 광수대 서도철에서 가장 서도철로 바뀌었기 때문인 것 같다만, 그래도 아쉽다. 이럴 거면 오달수와 장윤주는 왜 섭외했나 싶다.
축이 가장 서도철로 바뀌었다면, 그 안에서 관계성이 보여야 한다. 가족과의 관계성이나 이를 악용하려는 악역들과의 관계라거나 말이다. 그런데 그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갑자기 학폭 피해자가 됐고, 정해인은 어쩌다가 그걸 이용하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니 씬 사이의 이음쇠가 헐겁다.
관계가 없으니 캐릭터의 매력도 죽는다. 관계도 없는데 전사도 생략되어 있어서 더 그렇다. 베테랑1이 성공한 요인 중의 하나는 ‘매력적인 악역’이었다. 전작은 조태오의 악행을 설득시키진 않지만, 적어도 그가 왜 악인이 되었는지는 보여주는 장치가 많았다. 더불어 유해진이 맡은 최대웅을 활용해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이번 작품의 정해인은 정반대다. 영화 시작부터 이 사람이 악역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그가 왜 약인이 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방식의 악역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다크나이트의 조커다. 베테랑2는 다크나이트와 닮은 구석이 여러 가지 있다. 자신의 직업윤리를 되묻는다거나 윤리적 선택과 직업윤리적 선택 사이의 갈등이라거나 탄생과 이유가 불명인 악역까지 말이다.
그런데, 조커는 조커다. 역사를 불문하고, 이미 관객이 인지하고 있는 유명한 악인은 본인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게 매력일 때가 있다. 그런데 무명인 악역은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소위 ‘입체감’있는 악인이 탄생한다. 베테랑2는 그게 없다. 정해인의 연기는 빛나는데 정작 그가 분한 박선우는 뭣도 없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고, 공감할 구석도 없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튜브 책임론’이 떠오를 뿐이다. 정의부장을 좀 더 깊이감 있게 그려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캐릭터가 무너졌으면 개연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등하불명’류의 영화는 결국 주인공이 진실을 알아챘을 때 느껴지는 충격이 있어야만 한다. 이게 극적일 수록 쾌감도 커진다. 그런데 충격도 없었고, 알아차리는 근거도 너~무 적었다. 약간 오버치면, 김전일 + 코난 + 셜록 합친 추리력을 서도철이 가진 거랄까.. 좀 허무했다. 어떻게 밝혀질까 조마조마했는데 짜잔! 밝혀졌어요! 랄까.
답답하죠? 베테랑3 만들어 주세요
베테랑3가 나왔으면 한다. 정해인의 연기를 한 번 더 보고 싶고, 그가 분한 박선우도 한 번쯤 더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싶다. 베테랑1을 정말 재밌게 봤고, 2가 아쉽다보니 3가 다시 역전홈런 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3가 나온다면 류승완 시그니쳐인 오프닝 액션 시퀀스를 잘 뽑아줬으면 한다. 1은 오!였는데 2는 시트콤이었어..
불쌍한 저를 위해
구독은 여기서도 가능해요
메일리 :
Share article